[칼럼]동물약품배달부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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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동물약품배달부의 노래

유성찬 자유기고가  | 입력 2013-07-09 오전 11:28:39  | 수정 2013-07-09 오전 11:28:39  | 관련기사 2건

 

성찬200
▲ 유성찬 자유기고가

I am a poor wayfaring stranger.

While traveling thru this world of woe.

Yet there"s no sickness, toil or danger

In that bright world to which I go.

 

I"m going there to see my father.

I"m going there no more to roam.

I"m only going over Jordan.

I"m only going over home.

...

Wayfaring Stranger sung by Emmylou Harris

 

위의 노래는 길을 가는 나그네이다. 이 노래는 구전돼 내려오는 종교적인 색체의 민요로 삶의 고달픔이 그득한 현생보다는 피안의 세상에서 안식을 꿈꾸는 이야기이다. 슬픈 목소리로 유명한 외국 가수 에밀루 해리스(Emmylou Harris)가 부른 노래로 노래 속 이야기는 성경에 나오는 구절이기도 하다. 특히 성경의 말씀이어서 내용도 듣기에 자연스럽다.

 

나는 고뇌로 가득 찬 이세상을 떠도는
초라한 떠돌이 나그네


하지만 내가 가는 밝은 세상은
병도 싸움도 위험도 없는 세상

 

나는 아버지를 만나러 그 곳에 가네
더 이상 방랑하지 않아도 되는 그 곳


요르단 강 건너
내 고향으로 가네

 

나는 먹구름이 내 주위에 몰려올 걸 안다네
내가 가는 길은 험하고 가파른 길


하지만 내 앞에는 아름다운 평원이 준비되어 있다네
신이 나를 지켜주시겠지

 

이 노래는 이 세상은 스쳐지나가는 공간일 뿐이고, 우리는 거기를 떠도는 이방인, 무슨 욕망을 가진다는 말인가?’라는 반문을 하고 있다. 지주가 농노에게 체념하라고 가르치는 성경의 속임수가 아니라, 인생은 진정으로 아무 것도 아니고 그냥 스쳐지나가는 찰나일 뿐일 수도 있다. 그래서 인격이 특별한 사람들은 그 시간이 짧고 아쉬워 욕심을 부리고 악행을 저지르며 살아남은 자식들에게 재화를 물려주기 위해 급급해 하는지도 모를 일이다.

 

내가 이 노래를 들으면서 다닌 것은 지프 속이었다. 질주본능의 마음을 누르고 자동차의 속도를 천천히 하며 동물농장이 있는 들과 산 속으로 다니기에는 참으로 좋은 노래였다.

 

1999년부터 2000년까지 친구가 수의사로 있는 동물병원에 취직을 해서 농촌지역의 축산농장에 동물약품을 배달하게 되면서, 배달용 지프 카세트에 꽂아서 수없이 듣고 들었던 노래였다. 구성진 목소리의 노래여서 들으면 우울해지기도 하지만 시골을 돌아다니며 동물약품을 영업하는 사람으로서 적적함을 잘 달래주는 노래였다.

 

친구의 동물병원이지만, 취직을 한 것은 갓 태어난 아이의 분유 값이라도 내 힘으로 벌어서 키워야 한다는 의지 때문이었다. 그 전에는 직장을 구하기가 좀 더 어려워, 감옥에서 나오자마자 공공근로를 하면서 지역의 아주머니, 아저씨들과 함께 농촌에서 풀베기작업을 하게 됐다. 내가 가장 젊어서 민망하기도 했지만, 함께 공동 작업을 하는 것이 좋았다.

 

솔직히 아주머니, 아저씨들은 공공근로시간에 일은 조금만 하고 거의 담소를 나누면서 놀게 된다. 막걸리를 마시면서 흘러간 유행가를 부르는 사람들... 사회에서 좋은 대우를 받지는 못하지만 자기들끼리는 서로 위하며 사이좋게 지내는 분들이었다. 나는 술을 마시지 못해서 잘 어울리지는 못했지만 일을 할 때는 연세가 많으신 아주머니들이 내게 일감을 많이 넘겼고, 특히 톱질은 거의 내가 도맡아 했다.

 

하루 벌어 하루 먹는 사람들에게 무슨 낙이 그렇게 많겠냐마는 그래도 우리들은 즐거웠다. 카풀을 같이 하면서 공공근로에 나가면 저절로 협동심과 낮은 사람들의 생활상, 인간애를 보게 된다. 물론 술에 취해 부리는 추태도 가끔 보게 돼 불쾌함도 느끼게 될 때도 있었다.

 

내가 당시에 이 노래를 좋아하는 이유는 앞에서 말한 것처럼, 자동차를 몰고 다니는 위험 때문에 급하게 차를 운전하지 않기 위함이었다. 빠른 템포의 노래는 마음을 급하게 만들어 사고가 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언제나 피안을 꿈꿀 수 있다는 상상력 때문이었다.

 

어느 때인가? 경주 안강의 노당에서 트레일러와 부딪쳐 교통사고를 일으킨 적이 있는데, 트레일러의 커다란 강철 범퍼가 직각으로 휘어질 정도로 추돌 했었다. 나의 지프가 트레일러에 튕겨져 나가떨어질 때, ‘! 끝났구나"고 생각했지만 다행이 잠깐 기절했다가 아무런 이상 없이 일어 날 수 있었다. 튼튼한 지프였고, 옆길의 긴 콘테이너 판넬 펜스에 예각으로 부딪쳤기에 다행이었다. 십년감수라는 말을 그 때 알았다.

 

그 때 이후 급한 배달상황 때문에 이 노래를 계속해서 듣게 됐다. 자동차 사고는 언제라도 일어 날 수 있고, 자신이 일으키지 않아도 다른 차가 일으킬 수도 있는 것이지만 나 자신이 차분한 마음으로 운전할 수 있다는 것 때문에 이 노래가 좋았다.

 

존 바에즈(Joan Baez)의 음색보다는 에밀루 해리스(Emmylou Harris)의 노래가 가장 좋다. 구성진 가락에서 차분함을 느낄 수 있었고, 인생의 무상함이나, 살아오면서 느꼈던 여러 기억들을 떠올릴 수 있었기 때문에 좋았다.

 

나는 내 삶의 방향을 1984년에 정했다고 판단한다. 그 이전 대학에 입학하기 전까지는 청소년기의 동무들과 뛰어노는 즐거움을 뒤로하고는 막연하게 잘 살아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러나 1984년 후반기에 앞으로의 내 인생을 의미 있게 살기 위해서는 힘들게 살 수도, 고달플 수도 있겠거니, 그리고 그 어려움을 달게 받겠다는 생각을 분명히 했던 것 같다. 그래서 어려운 인생살이일 것이기에 결혼을 할 생각도, 여학생을 사귈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었다. 그러고 보면 아내에게 한없는 고마움을 느낀다.

 

옛날 서당이 있는 마을에서는 훈장어른이 아이들에게 공자와 노자를 동시에 가르쳤다고 한다.

 

논어와 맹자를 읽고 공맹의 이치를 깨닫는다. 그리고 세상에 나아가 유교의 원리로 세상을 다스리며 백성들의 어려움을 해결해 이 세상이 유학(儒學)으로 가득찬 세상을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고을에는 꼭 향교가 있다. 그 향교는 고을의 공동체를 이끄는 정신적 지주이기도 하지만, 무서운 양반들이 반상(班常)의 차별로 형벌을 내리는 곳이기도 한 것이다.

 

그렇게 유학을 통해 학문을 갈고 닦았지만, 모든 양반들이 반드시 출세를 할 수 있는 것도 아닌 것은 당연한 일이다. 춘향전, 오성과 한음, 어사 박문수 등 조선의 이야기 중에 과거급제를 한 사람들이 자주 나오지만 그렇게 쉬운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인생을 걸고 공부하다 실패를 하게 되면 출세만 바라보다 정진하던 공부가 얼마나 허탈할까? 그래서 머루랑 다래를 먹으면서 세상을 버리고 청산에 살자며 이 세상의 도가 자연과 안빈낙도(安貧樂道)에 있다고 주장하는 학문이 노장사상이다.

 

나는 사람의 마음속에 진취적인 자세로 세상을 개척하려는 의지가 있다는 것을 안다. 또한 인간이 곧 자연이듯이 자연 속에서 칡넝쿨처럼 얽혀 살아가고 싶은 자연주의적인 욕망이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인간은 생활 속의 상황 상황마다 부닥쳐오는 파도를 헤쳐 나가기 위해서는 두 가지의 방법 모두를 선택한다.

 

문제를 해결하려는 진취성과 시간의 흐름에 몸을 맡기는 것, 그 두 가지이다. 나는 지금도 둘 다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인생이라는 것이 적극성도 있어야 하겠지만, 간혹 시간이 해결할 때도 있는 것이기에 그렇다. 또 낙천적인 인생관과 염세적인 삶의 방식에는 통하는 것이 있다고 믿는다.

 

19943, 아버지께서 사망하셨을 당시 나는 서울의 기독교사회연구소에서 회의를 하다가 아버지께서 돌아가실 것 같은데 나를 많이 찾으신다는 동생의 말을 듣고 급히 포항에 왔었다. 하지만 때는 이미 늦어 버려 가족들에게 원망을 많이 들었다. 유언도 못 듣고, 임종도 지키지 못한 나는 정말로 불효자가 되고 말았다.

 

그리고 2개월 뒤에 감옥에 들어가게 됐다. 훗날 나의 삶을 회상하면서 모든 이야기를 하게 되겠지만 국가보안법에 위배됐다는 혐의로 19946월 감옥에 들어갔다. 그 때 아버지께서 돌아가셔서 둘째 아들이 감옥에 간다는 사실을 몰라서 다행이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감옥에서 손목을 긋기도 했다. 황석영 선생님의 면회불허가 발단이 돼 공안수들이 들고 일어났는데, 1996년에 연세대에서 있었던 집회로 갓 구속된 대학생들이 감옥에서 쟁투를 벌인 것이다. 그 때 나는 독방에서 3년을 보낸 뒤여서 웬만하면 나서는 행동을 하지 않았지만, 전체 공안수들이 농성을 하는 상태였다. 그래도 유연하게 문제를 풀고 싶었다.

 

그래서 3년 이상 독방에 있었음으로 방문을 열어달라고 요구했다. 행형법에 2년 이상을 독방에 두지 못하게 돼 있으며, 부득이한 경우에도 26개월을 넘기지 못한다는 규정을 지켜달라고 요구한 것이다. 대체로 교도관들은 좋은 사람들이었지만, 열쇠를 보안과에 반납을 했고, 지시에 따라 문을 개방할 수 없다는 말이 돌아왔다.

 

평소에 사이가 좋은 교도관들이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방문을 열어달라고 항의하며 캔 뚜껑의 날카로운 면으로 손목을 그었다. 잘 그어지지 않아 몇 번이나 그었다. 그 교도관은 열쇠를 가지러 뛰어갈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농성은 풀렸고 결국 교도소와는 화해를 했다. 당시는 젊은 대학생들의 혈기가 야속하기도 했지만 무사히 끝나게 돼 다행이었다.

 

감옥 생활에서 제일 힘든 것은 홀로 두고 온 아내걱정이었다. 집안의 구성으로 봐서는 남편이 감옥에 간 것이 아내에게는 대단히 불편 했을 테지만, 낙천적인 성격의 어머니께서 내 아내를 잘 챙겨주셨다. 나의 감옥생활이 길어지면 아내가 나를 두고 떠날까봐 어머니는 엄청 걱정이었을 것이다. 그래도 아내는 잘 견뎌 주었다. 그리고 199712월에 아내가 주는 두부를 먹었다.

 

약품배달을 하면서 자주 들었던 노래가 하나 더 있다.

 

아늑한 산골짝 작은 집에

아련히 등잔불 흐를 때

그리운 내 아들 돌아올 날

늙으신 어머니 기도해

 

그 산골짝에 황혼 질 때

꿈마다 그리는 불빛을

희미한 불빛은 정다웁게

외로운 내 발길 비추네

(미국의 민요, 산골짝의 등불 중에서)

 

자식을 갖게 되는 그 기쁨은 이루 헤아릴 수 없는 것이다. 부모가 된다는 것, 그 자식을 위해 땀 흘려 노동을 해서 먹거리를 해결해 본다는 것, 한 사람의 인간으로 태어나 느끼는 행복감 중에 가장 큰 것이라고 느끼게 됐다.

 

동물농장에 약품을 팔러 갔다가 퇴짜를 맞는다든가, 우리 동물병원에서 약품을 그만 사겠다고 통지를 받을 때는 그 쓰라린 가슴, 공허한 하늘, 지프를 타고 돌아오는 저녁, 서쪽의 노을을 보면서 영화 자전거 도둑의 아버지의 마음을 알고도 남음이 있다. 단순 업무인 배달 일을 하고, 약품 영업을 하면서 퇴짜를 맞고, 그런 일들을 겪어봐야만 이 사회에 대해 조금은 알게 된다고 믿게 됐다. 남들은 천박한 논리라고 애기할지 모르지만 결코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는다.

 

동물약품을 배달할 때, 자식새끼 분유 값 벌기 위해 뛰어다녔던 것이 그립고 가장 즐거웠던 것으로 기억된다. 영원히 살아계실 것 같던 부모님도 모두 돌아가시고, 나의 자식들이 커감에 따라 한 세대가 지나가고 또 한 세대가 성장한다는 것이 자연의 당연한 이치로 깨닫게 된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지나가는 시간이 덧없기도 하다.

유성찬 자유기고가 gsinews@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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