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론]강정마을 사태, 어디서부터 잘못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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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강정마을 사태, 어디서부터 잘못됐나

고성인터넷뉴스  | 입력 2011-09-02  | 수정 2011-09-02 오전 11:30:55  | 관련기사 건

▲ 김아현

제주참여환경연대

정책국장

숨을 쉬는 일이 힘들다고 했다. 건장한 체구에 타고난 체력, `강정 소(牛)`라 불리던 초로의 남자는 진통제를 먹고도 통증 때문에 침상에 눕지 못했다. 강제연행 과정에서 입은 부상도 부상이었지만, 4년이 넘도록 하루에 3시간 이상 잠을 자본 적이 없어 누적된 피로는 그의 눈자위를 누렇게 물들이고 있었다.

 

눈을 붙인지 두 시간이 채 지나지 않은 무렵, 형사들이 응급실에 들이닥쳤다. 그들은 전날 연행된 `공안사범`을 병원에 데리고 와 잠자게 하는 상황에 분노했다. 의사의 판단에 따라 진정제를 투여해 잠을 재우는 것이었지만, 의료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억지로 링거를 빼고 의식이 몽롱한 `강정 소`를 질질 끌고 나갔다.

 

평화롭던 섬마을을 덮친 공안정국

 

업무(제주해군기지 건설공사)방해 혐의로 8월 24일 불법연행--그는 연행 당시 업무방해를 하지 않았으며 담당 공무원과 대화를 시도 중이었다--된 강동균 강정마을 회장은, 당시 그가 수감 중이던 제주동부경찰서 형사들의 감호 아래 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도중 서귀포서 형사들에 의해 다시 유치장으로 끌려가 다음날 구속되었다.

 

진정제 투여를 억지로 중단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에 대한 의료진의 우려나 보호자의 항의는 `우리(형사)들이 먼저 죽겠다`는 분노를 앞설 힘이 없었다.

 

마을 곳곳, 주민과 시민단체 활동가들의 행동과 동선을 지켜보는 경찰병력이 배치되고, 기지 건설로 매립될 위기에 놓인 구럼비로 향하는 올레꾼들의 발길이 차단되었다. 마을 안길과 올레길 입구에선, 이전까진 단 한 번도 실시된 적 없는 음주단속을 빙자한 검문검색이 이뤄졌다.

 

보수언론과 대검찰청 공안검사가 `무력화됐다`며 격노한 그 공권력에 의해 마을주민과 활동가 다수가 온몸에 부상을 입었다. 불쑥 등장한 공안정국, 이제 강정마을 어디에서도 집회를 할 수 없다. `공사장 일대에 접근할 수 없고, 위반 시 1인당 1회 200만원을 대한민국 법무부장관에게 지급`하라고 해군과 법원이 특정한 39인 가운데는 법인 자격을 갖춘 시민단체도 포함되어 있다. 이에 따르면 해당 시민단체의 회원은 그 누구도 구럼비 바위를 껴안을 수 없다.

 

헌법이 보장하는 집회결사·의사표현의 자유를 실정법이 무력화하는, 어쩐지 대한민국에서는 익숙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지만, 국가안보 논리는 인권이라는 단어를 꺼내들 수 없도록 모든 것을 집어삼켰다. 제주해군기지가 과연 국가안보에 기여하느냐는 본질적 논의는 애초에 그 기회를 박탈당한 채.

 

모든 질문을 집어삼키는 `국가안보` 논리

 

우리는 지금껏 `평화`에 관해 사회구성원의 합의과정을 거친 적이 없다. 그래서 제주해군기지 반대운동의 여러 화두(환경보호, 절차적 정당성, 안보의 민주화, 공동체 보전) 가운데 `평화의 섬` 논리에 대해 어떤 이는 `평화를 원하면 전쟁을 준비하라`는 팍스 로마나 시대의 구절을 인용하는 것으로 응수한다.

 

해군기지 찬반 진영이 저마다의 평화를 이야기한다. 가깝게는 2002년 화순을 시작으로 이제 10년째인 제주군사기지 논란에서 평화나 군축에 관한 이야기가 한번쯤 등장했을 법도 하지만, `평화=국가안보=군비경쟁`으로 귀결되는 틀을 깨기에 60년 세월은 짧았다.

 

지역주민으로서 강정 일대의 환경보전과 연계하여 누릴 수 있다고 인정되는 유무형의 이익이 없으므로(누구에게나 환경권이 인정되는 것은 아니므로) 강정마을 주민들은 `절대보전지역해제 무효확인소송`에서 원고 자격을 박탈당했다.

 

해군기지 건설에 반대하는 토지주들의 땅은 강제수용 당했다. 기지 건설로 인해 매립될, 1.8km에 달하는 한 덩어리의 용암응괴 구럼비 바위에 서식하는 멸종위기 종 동식물은 `강제이주`라는 웃지 못 할 처분에 직면했다.

 

1900여명의 강정주민 가운데 85명만이 마을향약 등을 위반해 총의를 조작한 기지유치 결정은, 대다수 주민이 합법한 절차에 따라 모아낸 반대의사를 끝내 눌렀다. 위법성이 드러난 후보지 선정 여론조사, 졸속으로 진행된 사전환경성검토와 환경영향평가, 문화재(범섬 일대에 서식하는 연산호군락)보호법 위반 등에 관한 합당한 문제제기도 힘을 잃기는 마찬가지였다.

 

국가안보 논리는 이 모든 물음표들을 집어삼키고, `보상금이 모자라 떼쓰는 님비(NIMBY)`라는 조롱에서부터 `종북좌파의 체제전복 시도`라는 공안정국을 형성하기에 이르렀다. 국가가 추진하는 사업에 반대하므로 국가구성원으로서의 자격을 잃음과 동시에 치료받을 권리, 평화적으로 의사를 표현할 자유, 재산권을 주장할 목소리를 잃어도 마땅하다고 여겨지는 현장이 바로 강정이다.

 

원점에서 재논의, 어려운 일 아니다

 

제주 4·3사건을 국가권력에 의한 폭력으로 규정하고 제주도민에게 공식사과를 했던 정부가 있었다. 등에 업은 핏덩이가 빨갱이로 몰려 죽창에 찔리는 극한의 고통을 겪었어도, 그 기억을 안고 세상을 뜨기 전 끝내 듣고야 만 사과의 한마디가 고마워 체통 놓고 울었던 할머니도 있었다.

 

그로부터 5년이 지나, 4·3사건 당시 서북청년단과 육지응원경찰을 방불케 하는 대규모 시위진압 전문병력과 기동부대가 강정마을 일대를 장악했다. 주민과의 물리적 충돌, 그로 인한 갈등의 확산을 최대한 막아보고자 나름의 노력을 기울였던 서귀포 경찰서장은 `무능한 공권력`으로 낙인찍혀 경질 당했다.

 

대화의 통로가 사라진 강정주민과 제주도민은 63년 전의 악몽이 재현될지 모른다는 공포와 불안에 놓였다. 농사짓고 친목모임에 나가는 평범한 일상은 사라진 지 오래다.

 

강정주민이 간절히 소망하는 것, 거창한 데 있지 않다. 그들이 이곳에서 나고 자라 누리며 살아왔던 평범한 일상. 범섬 앞바다와 강정천에서 잡아 올린 물고기, 철 따라 농사지은 것들을 이웃과 나눠먹는 것으로 그저 행복하던 소박한 기억의 재생이다.

 

부조리와 위법으로 점철된 지금까지의 절차를 모두 접고 해군기지 건설을 원점에서 재논의하는 것은 생각하기에 따라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강정 해군기지 건설을 중단할 수 없는 이유로 군이 제시하는 `14%의 공정률`은, 사실 토지보상과 강제수용에 쓰인 예산집행이 대부분이다. 잘못 꿰어진 첫 단추를 풀어 다시 꿸 수 없다면, 대한민국은 한발도 앞으로 나갈 수 없을 것이다.<창비주간논평>

 

저자 소개

 

김아현 제주참여환경연대 정책국장, 제주군사기지저지범대위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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