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은 이야기- 현미경으로 사람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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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은 이야기- 현미경으로 사람보기

조명자 / 자유기고가  | 입력 2016-06-16 오후 02:28:42  | 수정 2016-06-16 오후 02:28:42  | 관련기사 2건

조명자 / 자유기고가

 

조명자.jpg매달 모여 불교공부를(나는 심부름꾼처럼 가방만 들고 왔다 갔다하는 엉터리지만) 같이 하는 도반 중에 칠순 넘으신 노보살님이 계신다. 모임 회원 중 제일 좌장이시지만 언제나 아랫사람에게 깍듯하고 말씀도 없으신 점잖은 양반이다.

 

게다가 불교 경전과 불교문화에 대한 지식도 웬만한 불교 학자 저리 가라 할 정도로 해박하시기 때문에 수행에 대충인 스님들이 그 앞에선 쪽도 못 쓴다. 하여튼 십 수 년을 줄기차게 따라 다니며 강의는 열심히 들었건만 나중에 들으면 매양 처음 듣는 소리 같고 쫄쫄 따라 다닌 그 많은 답사지도 가 본 곳인지 안 가본 곳인지 사정없이 헷갈리는 불량도반인 나로선 당연히 그 양반 앞에서 찍 소리도 못 하는데 이 어른이 대충건달인 나의 어떤 부분을 예쁘게 보셨는지 종종 불러주신다.

 

둘이 앉아 찻상 마주 놓고 도란도란 얘기 나누다 보면 스님 이야기, 절 이야기, 불교공부 이야기, 꼭 어린 시절 할머니 무릎 베고 옛날이야기 듣는 것 같은 착각이 들 만큼 이야기속이 무궁무진했다. 그때도 법정스님 열반 얼마 안 돼서 였을 것이다.

 

사실 생전의 법정스님에겐 그리 호의적이지 못 했다. 우선 스타 스님이라는 것도 거리를 두게 했고 스님 하면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 잔잔하고 편안해서 못난 중생도 스님 앞에선 돌아 온 탕아처럼 마음 놓고 울 수 있는 그런 분위기가 없는 분이라는 데도 한 표가 더해졌다.

 

수행승이라기보다는 대단한 문필가 또는 날카로운 지식인? 그런 분위기가 하도 강하게 느껴지다 보니 나도 모르게 괴팍하고 오만한 사람이라는 편견을 가지게 됐다. 물론 스님 저서를 보면 존경심이 절로 갔다. 아수라장터 같은 불교계에 법정스님 같은 선지식이 계시다는 것이 그나마 불자들의 부끄러움을 조금이라도 덜게 했으니까.

 

법정스님 떴다 하면 구름처럼 모여드는 보살들. 스님 법문을 듣고 싶어 부지런히 발품을 파는 지인들도 있었지만 한 번도 동참하지 않았다. 그런데 스님이 열반하시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마음이 바뀌어졌다. 어마어마한 재산을 스님 아니면 안 된다고 억지로 떠안길 만큼 대단한 추앙을 받는 분, 스님 저서에 감명 받아 스승으로 모시는 수많은 독자들, 스님을 친견하고 싶어, 귀한 법문 한 구절이라도 놓칠 새라 구름처럼 몰려드는 수많은 불자들...

 

불교계 지도자라고 하면 대부분 거창한 다비식에 호화로운 부도탑이 대세인 요즘에 그렇게 존경과 사랑을 한꺼번에 받는 스님이 당신의 법구를 아주 간단히 보내달라는 유지를 부탁했다는 것도 그랬고 스님의 유지를 충실히 받들었던 제자 스님들의 겸손한 다비식도 감동을 주기에 충분했다. 더구나 평상에 누운 채로 다비식장으로 향하던 스님의 법구. 그 장면을 본 나는 충격에 휩싸였다.

 

저런 어른을 왜 겉모습만 보고 그렇게 멀리 했나 후회도 됐다. 스님 생전에 법문 한 번 못 들은 것도 후회막급이었다. 열반하신 후 미처 못 본 스님의 저서를 몽땅 사들였다. 읽고 또 읽으면서 뒤늦은 '법정 신드롬'에 푹 빠져 스님 광펜이 된 터라 그 날도 보살님 앞에서 법정스님 이야기를 꺼내게 되었다.

 

척박한 불교계에서 그나마 계시던 큰스님이 타계하셨으니 그 빈자리를 무엇으로 메울까 애통해하는 내게 보살님이 덤덤하게 한 마디 던지셨다.

 

"무소유를 실천하는 사람은 무소유를 들먹이지 않는 법이야. 무소유, 무소유 그러는 것은 무소유를 행하고 싶다는 서원일 뿐이지. 법정스님은 괴팍하고 까탈스러운 사람이었어. 어디 나서면 늘 보살들을 몰고 다녔지. 오두막 생활을 하셨다지만 그리운 것 없이 산 스님인 것은 틀림없어..."

 

아주 가까이에서 법정스님을 지켜보신 것 같았다. 깜짝 놀라는 내게 더 이상은 언급을 안 하셨다. 다만 보이는 게 전부는 아니라는 소리를 알 듯 모를 듯 흘리시면서. 나중에 생각해 보니 그랬다. 열반하신 스님을 헐뜯기 보다는 열반과 동시에 우상을 만들려는 사람들의 어리석음을 경계한 것 같았다. 법정스님이 큰스님이라지만 중생의 한계는 그만큼 아득하고 뚫기 어렵단다 그 얘기를 하고 싶으셨는지도 모르겠다.

 

보살님의 냉정한 평가에 실망했다기 보다는 더도 덜도 말고 본 대로 말할 수 있는 그 담담함이 더 닮고 싶었다. 왜냐하면 나도 늘 느끼던 바니까. 우리는 대부분 글과 글쓴이를 동일시한다. 먹물은 먹물이고 종이는 종이일 뿐인데 저자의 필력이 그 사람의 인품이라고 착각한다고나 할까.

 

70~80년대를 길바닥에서 지랄탄과 친구하며 보낸 탓인지 우리 부부는 유명한 사람들을 많이 알고 있는 편이다. 어떤 이는 정계에서, 어떤 이는 학계에서 또 어떤 이는 잘 나가는 기업가로. 하여튼 능력을 펼치는 분야도 다양하다.

 

옛날엔 군수나 구청장 여하튼 ''자리만 붙었다 하면 아니 아전 수준만 되더라도 아주 하늘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TV만 켰다 하면 아는 사람들이 툭툭 튀어나오니까 이제는 대통령이고 장관이고 국회의원이고 나라를 쥐락펴락 한다는 사람들이 그리 대단하게 보이질 않다는 것이다.

 

덕분에 까칠해졌다. 사람을 평가하는 데서 말이다. 왕년의 그 사람들을 아주 가까이서 지켜봤으니 됨됨이에 대해선 너무 '빠삭'한 게 걸림돌이라고 할까. 정치지도자들에 대해선 더 야박하다. 이래서 문제고 저래서 문제고...수시로 토를 다는 나를 보고 보다 못한 남편이 정색을 하고 나무랐다.

 

"사람이 나이 들수록 너그러워져야지 왜 그리 까칠하나? 흑백이 그리 선명하면 인간이 아니지. 모자란 점은 덮어주고 좋은 점은 알아주고 그래야 되는 거 아니야. 이 사람아~ 자네한텐 성이 안 찰지도 모르지만 저런 정치 지도자들이 더 많이 포진한다면 법과 상식이 통하는 선진국가 되는 건 일도 아니야."

 

아우~~순리대로라면 남편 말대로 넉넉해져야 한다. 눈도, 귀도 침침해지면 사물이 대충 아름답게 보일텐데 이놈의 마음자리는 왜 그렇게 빡빡하냐? 육신이 늙어지면 마음도 따라 늙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남은 세월이 아쉽고, 남겨진 사람들이 애틋하고 더 사랑하지 못 해 아쉬운...그런 마음자리면 정말 좋겠다.

 

돋보기로 사람 해체하다 못해 망원경까지 들이대는. 괴팍하고 심술궂고 고약하기 짝이 없는 맘보. 긍정 보다는 부정이, 덕담 보다는 험담이 시시콜콜 못마땅한 부분만 늘어나는...이러다 나 왕따 되겠다.

 

조명자 / 자유기고가 gsinews@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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