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명숙, 제1야당 민주통합당을 접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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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명숙, 제1야당 민주통합당을 접수하다!

김현정 기자  | 입력 2012-01-15  | 수정 2012-01-15  | 관련기사 건

문성근·박영선·박지원·이인영·김부겸 최고위원 당선

 

한명숙 전 국무총리가 민주통합당의 당수가 됐다.

 

 

민주당의 모태라고 할 수 있는 2000년 故 김대중 전 대통령이 창당한 새천년민주당 탄생 이후 최초의 여성 대표가 됐다.

 

친노이면서, 구민주계, 시민사회 진영을 아우르고 있는 한 신임대표의 당선은 통합민주당이 출범한지 얼마 안 된 상황에서 화합이라는 우선적인 요구가 반영된 결과라고 평할 수 있다.

 

한 신임대표는 고양 킨텍스에서 15일 치러진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득표율 24.5%로 당대표로 선출됐다.

 

16.68%를 득표한 2위 문성근 최고위원 당선자와 7%이상 차이가 나는 압도적인 득표율이었다.

 

한 신임대표는 이날 대표 수락연설을 통해 “정권교체, 정치교체로 대한민국의 새 역사를 쓰겠다”고 정권 교체의 굳은 의지를 보였다.

 

한 신임대표는 특별히 지난해 11월 22일 한나라당의 날치기로 가결된 한·미 FTA비준안 관련 “굴욕적인 협상이라 보고 있다”며 “한·미 FTA 폐기”를 약속했다.

 

3위엔 박영선 후보(15.74%득표)가 4위는 박지원 후보(11.97%), 5위 이인영 후보(9.99%), 6위는 김부겸 후보(8.09%)가 차지해 지도부에 입성했다.

 

당초 문성근, 한명숙 2강 박영선, 박지원, 이인영, 김부겸 4중 이강래, 이학영, 박용진 3약 구도에서 이변은 일어나지 않았다.

 

 

이번 경선결과의 의미는 친노의 약진이다.

 

한명숙 신임대표와 문성근 최고위원 모두 뿌리는 故 김대중 전 대통령이지만, 참여정부에서 국무총리를 지냈고 문 최고위원은 故 노무현 전 대통령을 대통령에 당선 시키는 데 일조 했으며, 본업인 영화배우를 버리고 정치에 뛰어든 직접적인 계기가 노 전 대통령의 서거였다.

 

문 최고위원은 2010년 8월 백만 민란 결성 이후 ‘국민의 명령’ 대표가 되어 민주당과 중통합을 이루어 냈고, 민주통합당이 출범한 직후 본격적인 정당 정치에 들어선지 채 2달도 되지 않아 단숨에 제1야당의 최고위원이 되는 기염을 토했다.

 

이 밖에 대표 386 세대 정치인으로 분류되는 이인영 최고위원과 김부겸 최고위원의 지도부진입에 성공했다.

 

전통 호남계의 지지를 받고, DJ의 영원한 비서실장 박지원 최고위원은 당초 당대표에 대한 강한 열망을 가지고 있었으나 최고위원으로 만족해야 했다.

 

제 1야당의 당수가 된 부드러운 카리스마 한명숙은 누구인가?

 

1944년 3월 24일 평안남도 태생으로 올해 우리나라 나이로 69세가 됐다.

 

군부독재시절 크리스찬아카데미에서 활동하였고, 민주화운동을 하다 투옥되기도 했다.

 

남편 박성준 성공회대학고 NGO대학 겸임 교수와 1967년 결혼하였지만, 결혼 후 6개월 만에 박 교수가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수감되어 1981년 석방 될 때 까지 13년간 생이별을 겪어야 했다.

 

한 대표도 1979년 체제 비판적인 이념서적을 학습·유포한 혐의로 수속 되어2년 6개월간 수감 생활을 해야 했다.

 

한 대표는 1999년 참여연대 공동대표로 활동 시절 김대중 전 대통령의 권유로 새천년민주당 작업에 참여하면서 정계에 입문한다. 이후 비례대표로 16대 국회의원에 선출돼 의정활동을 시작했다.

 

2001년 초대 여성부 장관으로 취임해 3개월 출산 휴가 등 여성 복지 정책을 실현했다.

 

2003년 참여정부에서 환경부 장관을 역임 하였고, 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고양시 일산 갑에 출마하여 당선됐다.

 

2006년 참여정부 말기 여성 국무총리에 임명 되어 1년간 총리직을 수행했다.

 

이후 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고양시 일산동구에서 출마하지만 낙선하게 된다.

 

2009년 고 노 전 대통령 서거 당시 유족측의 공동장의위원장을 맡았고, 29일 영결식에서 슬픔을 가득 담은 목소리로 “대통령님 지켜드리지 못해서 죄송합니다”고 조사를 낭독했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2010년 지방선거에서 서울시장에 출마하지만 1%차이로 오세훈 전 서울시장에게 안타깝게 분패하고 만다.

 

2009년 12월 2007년 총리 재직 시절 곽영욱 전 대안통운 사장으로부터 인사청탁 명목의 5만 달러를 수수한 혐의로 불구속기소 되었으나 1심과 2심에서 모두 무죄 판결을 받았다.

 

김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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