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희의 즐겁게 책읽기-생명의 윤리를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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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희의 즐겁게 책읽기-생명의 윤리를 말하다

고성인터넷뉴스  | 입력 2012-09-26  | 수정 2012-09-26  | 관련기사 건

생명의 윤리를 말하다

마이클 샌델/동녁

 

그렇다. ‘정의란 무엇인가’의 마이클 샌델 교수다. 알다시피 샌델교수는 공화주의와 공동체주의 그리고 자유주의적 정의에 대해 주장해왔다. 공동체주의자 치고는 대단히 자유파스러운 그러면서도 뭔가 우리네 민주파의 정서에 가깝다고 느껴지는 정의파다. 그 분께서 이번에는 생명의 윤리에 대해 말씀하신다.

 

 

 

마이클 샌델 교수는 조지 W. 부시 대통령 시절에 대통령생명윤리위원회의 위원으로 위촉돼 수년간 일한 경험이 있다. 정치철학자로 의료윤리학자로서 줄기세포 연구의 윤리적 함축에 대해 참여했는데 이 위원회는 줄기세포 복제에 대한 연구를 허용할지 여부를 놓고 6개월 동안 토론을 벌였다.

 

결과적으로 투표를 통해 이 연구를 금지하게 됐다. 그러나 샌델 교수는 배아복제에 대해서는 찬성하지만 인간복제에 대해서는 반대한다는 입장이었다. 연구를 찬성한다는 입장이었다는 얘기다.

 

샌델 교수다운 스토리텔링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아이를 원하던 레즈비언 커플이 자기들처럼 소리를 듣지 못하는 아이를 갖기로 작정하고 5대째 청각장애인 가족에서 정자 공여자를 찾았다. 당연히 워싱턴 포스트의 독자들의 엄청난 비난을 샀다.

 

한편 하버드대학교 학보에 불임부부가 난자 공여자를 찾는다는 광고가 실렸는데 난자공여자의 자격이 키 175센티미터 이상, 튼튼하고 몸매가 날씬한 여성으로 가족의 병력에 문제없어야 하며 대학수학능력시험 SAT 점수도 1400점이 넘어야 한다는 광고였다. 하나는 비난에 시달렸고 하나는 무리 없었다면 도대체 도덕적으로 무엇이 문제였다는 말인가? - 역시 샌델!

 

두 번째, 운동선수가 유전공학의 도움을 받는 것은 정당한가 하는 문제다. 자연적인 재능의 축복은 받지 않았지만 사람들은 노력과 분투와 투지와 기개로 뛰어난 실력을 보여주는 피트 로즈와 같은 야구선수로 애쓰지 않고도 우아하리만치 주어진 재능을 잘 보여주는 조 디마지오가 모두 실력을 좋게 하는 강화제를 먹었다고 가정하자. 어느 선수에게 더 환멸을 느끼는가?

 

또 다른 사례로 나이키는 하이테크 훈련실험으로 오리건주 포틀랜드에 있는 밀폐된 고도조절훈련소에서 진행하는데 해발 3658~5182미터에 있는 트랙과 같은 조건으로 유망한 선수 5명을 골라 그 훈련소에서 훈련한다. 잘 때도 히말라야 정상처럼 산소를 희박하게 조절해서 선수의 몸에 산소를 운반하는 적혈구 생성을 활성화하는데 이것이야 말로 지구력의 핵심이다.

 

국제 올림픽위원회에서는 이와 같은 인공적 고도훈련을 금지할지 여부를 놓고 전전긍긍하고 있다. 그러나 올림픽위원회는 선수들이 다른 방법-에리스로푸이에틴주사, 투석환자들을 위해 개발된 합성 EPO 등으로 적혈구의 농도를 증가시키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셋, 부모가 자녀의 인생을 결정하는 것은 정당한가? 돈 있는 부모들은 아이를 비싼 학교에 보내고 가정교사를 고용하며 테니스 캠프에 보내고 피아노와 발레 수영레슨 SAT준비 과외 등의 비용을 대주는 것과 유전공학을 이용해서 아이의 지능과 음악적인 능력과 운동기술을 강화하는, 혹은 그런 아이를 가질 수 있는 선택적 유전형질의 변형은 둘 다 똑같이 존경받아야 할 일인가?

 

현대 미국역시 과외와 교육이 강화되면서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 ADHD로 진단받는 아이들의 비율이 급상승해 리탈린자극제의 법적 생산량이 총 1700퍼센트 증가하고 암페타민 제제인 아데랄 역시 3000퍼센트 증가했다. 모두 ADHD치료제다. 이 두 가지 약물은 의료적인 목적과 경쟁력을 원하는 정상 아이들의 능력을 강화하는 비의료적인 목적에 사용되기 때문에 다른 강화 테크놀로지와 동일한 도덕적 딜레마를 제기한다.

 

네 번째, 인간을 만들 것인가 태어나게 할 것인가? 미국 롱아일랜드의 콜드스프링하버연구소에 우생학기록사무소를 열었다. 유전적으로 결함이 있는 아이의 출산을 예방하기 위한 우생학적 노력의 기반 될 자료를 확보한다는 의미다. 다시 말하면 쓸 만한 유적형질 아이만을 낳도록 하자는 것이다. 여기에 카네기재단, 유니언퍼시픽, 루스벨트가 지지했다.

 

미국우생학회는 ‘좋은 유전자 가족 뽑기 콘테스트’를 열기도 했다. 이들은 초기 아돌프 히틀러의 ‘결함이 있는 사람에게 동일한 결함이 있는 자손을 갖지 못하게 하는 요구는 명백한 이유가 있다’는 의견에 로스앤젤레스타임스가 1935년 <히틀러는 왜 부적격자를 불임시키라고 하는가!>라는 낙관적인 논평을 싣기도 했다.

 

샌델교수는 배아윤리학-줄기세포 논쟁 역시 피해 가지 않는다. 그는 어디서부터 인간으로 볼 것인가를 주요 관심으로 돌린다. 난자와 정자가 결합돼 만들어진 배아에서부터 인간으로 볼 것인가? 그래서 줄기세포를 추출하는 것, 발생초기 인간의 생명을 파괴하는 연구가 단연코 거부돼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반론을 편다. 샌델의 ‘선물로 얻은 삶의 가치’라는 윤리가 줄기세포 연구를 비난하지 않는 것을 입증하고자 하는 이 책, 현대 과학기술의 목표와 생명윤리에 대해 한번쯤 고민할 만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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